경주 새내기 공무원 청렴나들이 4탄(다산초당)

최해열님 | 2016.04.26 18:10 | 조회 257

다산수련원에서 다산초당으로 향한다.

새내기 식구들은 오래만에 풀어놓은 송아지와 처럼 모두가 즐거운 표정으로 체험에 임했다.





















다신초당 안내표지판이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다.




다산수련원 안내공무원에게 사진한컷 부탁, 안내담당공무원도 겨우 2년된 새내기 공무원이였다.

거시기 오빠야 저도 카메라 쫌 찍을줄 안강당.............




다산수련원 교육진행팀장 겸 문화해설사 선생님의 다산초당 설명에 모두가 열중

다산초당은 이곳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으로 사적 제10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건축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정약용()이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귀양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의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 년간 생활하면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함으로써 실학사상의 산실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하여 이 해 사적 제107호(정다산유적 )로 지정받았다. 건물은 도리단층기와집으로 문화재관리국에서 관리하고 있다.

 

1970년, 1971년, 1975년에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이라는 현판은 김정희()의 글씨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정석()·약천()·연지석가산()·다조() 등 다산의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다산초당 - 연지석가산

 

다산은 원래 있던 연못을 크게 넓히고 바닷가의 돌을 주워 조그만 돌을 쌓아 석가산이라고 하였다. 연못에 잉어도 키웠는데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후 제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잉어의 안부를 물을만큼 귀하게 여겼다. 신기하게도 다산은 잉어들의 행동을 보고 날씨를 알아냈다고 한다.



다산초당 동암

 

동암은 송풍루라고도 불리는데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천여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았던 뜻 깊은 장소이다. 다산은 초당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 머물며 집필에 몰도했으며, 목민관이 지녀야 할 정신과 실천 방법을 적은 목민심서도 이곳에서 완성했다고 한다. 1976년 서암과 함께 세웠는데, 현판 중 보정산방은 추산의 친필을 모각한 것이고, 다산동암은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라고 한다.





<다음날 새벽 다시찾은 다산초당>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동겸 다시찾은 다산초당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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